"법 44조를 잘 보세요. 대형마트까지 포함되면 안 되겠죠? 특정 성분은 제외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지부나 약사회나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의약품 약국외 판매 문제와 관련해 들리던 대부분의 얘기는 사실이 됐다.

대략적인 윤곽은 대한약사회가 21일과 22일, 서울과 경기 지역 약사회장과 연이어 회의를 진행하면서 드러났다.

이어 23일 대통령에 대한 복지부의 업무보고를 앞두고 0시 무렵 대한약사회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아침에는 복지부가 약사회 결정을 환영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퍼즐 조합이 완성되는 양상이다.

◇ 발표 자료 의미는?

24시간 운영 장소=편의점, 최소한의 필수 상비약=필수 상비약, 18대 회기 내 처리=개정안 수정.

불과 10시간 정도 차이를 두고 발표된 약사회와 복지부의 공식 입장은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이다.

편의점에서 필수 상비약 개념의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제출돼 있는 약사법 개정안을 수정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약사회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와 상당 부분 다르지 않다.

의약품 판매를 규정한 약사법 제44조에 예외 조항을 새로 신설하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얘기가 있었고, 구체적인 품목 등은 고시로 다루는 방안이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알려지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자체 회의와 지역 약사회장단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확실해지면서 잡힌 윤곽이라도 발표해야 한다는 복지부와 약사회 양측의 긴박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3일 복지부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를 앞두고 서둘러 자료가 나오면서 이번 입장 발표 역시 복지부와 약사회가 사전 교감을 갖고 움직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 복지부·약사회의 '출구전략'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진행된 약사회와 복지부의 입장 발표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3분류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바통을 국회로 넘긴 상황에서 복지부가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방향을 바꾼 협의안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정책적 판단을 갖고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이 본회의는 고사하고 상임위 조차 상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불쾌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약사회가 먼저 어떤 안을 제시해 이에 대해 복지부가 입장을 발표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힐 것이라는 예측은 계속돼 왔다.

약사회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약사법 개정을 저지해야 하는 것이 당면과제이기는 하지만 상임위 상정 불발로 결론이 나면서 자칫 정부와의 관계가 틀어져 이러한 결과가 앞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복지부와 약사회 양측을 모두 고려한 적절한 출구전략이 필요했고, 사전교감을 통해 업무보고를 앞두고 서둘러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 압박 카드 있었나?

일부에서 제기된 선택분업이나 원내조제 등 정부의 '협박카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복지부는 부정했다.

약사회의 '전향적 협의' 발표 이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선택분업이나 5세 이하·65세 이상 원내 조제, 무자격자 판매, 부당청구 등 크게 4가지로 요약되는 압박카드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3일 브리핑에서 복지부 김국일 과장은 "지난달 전향적 협의 발표 이후 논의를 거치면서 의견을 접근하게 된 것"이라면서 "업무를 담당해 보니 정부의 협박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 앞으로 예상되는 일정은?

복지부의 '약사회 결정 환영' 입장 발표가 있은 23일, 약사회는 이사회를 예정하고 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23일 이사회를 거쳐 정기총회를 통해 추인받는 형식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집행부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될 전망이라 이날 이사회는 장시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미 국회에 제출된 약사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서 수정될 수 있도록 하고, 2월 개최가 예상되는 임시국회를 통해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 "1년 동안 한 것은 무엇이냐"

약사회 집행부의 판단과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회원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의 감기약 발언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수많은 집회와 광고를 진행하고 서명운동을 이끈 동력과 성과는 무엇이냐는 반문 때문이다.

한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회원이 구호를 외치며 현장에 참여하고,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한 것은 이익 때문이 아니라 약사라는 직능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라면서 "발표된 내용대로 전향적 협의를 진행됐다면 그동안 개정 저지에 참여해 온 회원의 의지를 뒤엎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