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피임제 복용의 성패를 좌우하는 위험요인일 수 있다는 항간의 오랜 가설을 반박한 조사결과가 공개됐다.

다시 말해 피임제는 비만 또는 과다체중에 속하는 여성이든, 깡마른 체형으로 분류되는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동등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는 것이다. 체중에 따른 피임제 복용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비교평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에 소재한 컬럼비아대학 의대 메디컬센터 및 장로교병원 공동연구팀은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가 발간하는 학술저널 ‘산부인과학’誌 8월호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경구피임제를 복용하는 동안 정상체중 여성 및 비만여성들에게서 나타난 배란 억제효과 무작위 대조연구’.

이번에 공개된 연구결과는 현재 20세 이상의 미국여성들 가운데 65%에 육박하는 이들이 비만 또는 과다체중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상기할 때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연구를 총괄한 컬럼비아대학 의대의 카롤린 L. 웨스트호프 박사(가족계획)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이번에 도출된 결론을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제부터는 비만여성들에게 경구피임제 처방전을 발급할 때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웨스트호프 박사팀은 과다체중자와 정상체중자가 모두 포함된 18~35세 사이의 가임기 여성 피험자 226명을 무작위 분류한 뒤 각각 소용량(에티닐 에스트라디올 20μg+레보노제스트렐 100μg) 또는 고용량(에티닐 에스트라디올 30μg+레보노제스트렐 150μg)의 경구피임제를 2회(1회당 21일) 복용토록 하는 방식의 이중맹검법 연구를 진행했었다.

시험에 참여한 정상체중 피험자들의 체질량 지수(BMI)는 19.0~24.9kg/m²였으며, 과다체중 피험자들의 BMI는 30.0~39.9kg/m²였다.

피험자들에게 건넨 경구피임제의 용량에 차이를 두었던 것은 항간에 알려져 왔던 바와 같이 체중이 많이 나가는 여성들의 경우 피임제도 좀 더 높은 용량을 복용해야 효과적일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였다.

경구피임제에 피험자들의 몸이 적응하는 데 필요한 3개월 및 4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연구팀은 경질(經膣) 초음파 촬영검사와 정맥절개 혈액검사 등을 4주 동안 주당 2회씩 진행해 배란 억제에 미친 영향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경구피임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한 피험자 그룹 150명의 경우 정상체중 여성 96명 가운데 3명과 비만여성 54명 중 1명 등 총 2.7%에서 배란이 이루어졌음이 눈에 띄었다.

반면 경구피임제를 꾸준히 복용하지 않았거나, 전혀 복용하지 않았던 그룹에서는 배란률이 오히려 한층 높은 빈도로 나타난 것으로 관찰됐다.

웨스트호프 박사는 “이 같은 연구결과야말로 경구피임제 복용의 성패가 체중 때문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복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경구피임제를 복용한 여성의 체중이 배란 억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사료된다는 것.

게다가 비만여성들에게서 소용량 제형이 고용량 제형과 동등한 수준의 배란 억제효과를 나타낸 것은 피임제 복용이 혈전이 발생할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는 맥락에서 볼 때 의의가 큰 발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