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탄 채 10대가 넘는 자동차 위를 날아가 사뿐히 착지하는 등 놀라운 묘기로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는 전설적인 스턴트맨 ‘이블 크니블’은 지난 2007년 11월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수많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던 강철男 이블 크니블을 쓰러뜨린 것은 뜻밖에도 중증 폐질환의 일종인 폐 섬유증이었다.

미국에만 환자수가 약 15만명, 전 세계적으로는 줄잡아 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폐 섬유증은 폐 이식수술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가 전무한 형편이다.

이 때문에 폐 섬유증 환자들은 호흡력이 떨어지고, 진단 후 3~5년 이내에 사망에 이르는 것이 통례로 알려져 있다. 호흡곤란으로 인해 일산화탄소 폐 확산능이 35% 이하로 떨어질 정도.

그런데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실데나필)가 이 중증 폐질환을 완화시키는 데도 약발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한 연구결과가 공개되어 주목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州 산타 바바라에 소재한 샌섬 클리닉의 데이비드 A. 지스먼 박사 연구팀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온-라인版에 18일 게재한 논문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 논문의 제목은 ‘진행성 특발성 폐 섬유증 환자들에게서 실데나필이 나타낸 효능을 평가한 임상시험’.

지스먼 박사는 ‘비아그라’가 ‘리비타오’라는 이름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도 발매되고 있는 데다 폐 섬유증이 폐 내부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데, ‘비아그라’가 이처럼 수축된 혈관을 팽창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에 착안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었다.

연구는 180명의 남‧녀 진행성 폐 섬유증 환자들을 피험자로 충원한 뒤 무작위 분류를 거쳐 각각 1일 20mg의 ‘비아그라’ 또는 플라시보를 12주 동안 복용토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mg이라면 발기부전 치료제로 발매 중인 제형에 비해 5mg이 낮은 용량이다.

그 결과 ‘비아그라’ 복용群의 10%(89명 중 9명)와 플라시보 복용群의 7%(91명 중 6명)에서 6분 동안 보행한 거리가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어 두 그룹간 차이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6분 보행거리는 호흡기 질환 환자들의 증상 강도를 측정하는데 널리 사용되는 생리학적 지표의 하나이다. 폐의 산소화 기능과 일산화탄소 확산능, 호흡곤란의 정도, 삶의 질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자이기 때문.

그런데 ‘비아그라’를 복용한 그룹의 경우 놀랍게도 일부 환자들에게서 호흡이 한결 용이해졌을 뿐 아니라 삶의 질에도 개선이 수반되었음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 같은 증상 개선은 진행성 특발성 폐 섬유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이었다.

지스먼 박사는 “폐 섬유증 환자들에게 지금 당장 ‘비아그라’를 복용토록 권고하기에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초기단계의 환자들이 복용하면 증상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피력해 가능성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