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을 이용해(recruit) 항암제를 체내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어서 흥미로움이 앞서게 하고 있다.

부피가 큰 효소를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professional) 역량을 나타내는 탄저균 독소의 특성을 항암제의 체내전달에 접목시키려는(hijacked) 것.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화학과의 브래들리 L. 펜텔루트 교수 연구팀은 학술저널 ‘케모바이오켐’誌(ChemBioChem) 온라인版에 지난달 22일 게재한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탄저균 방어항원을 이용해 항체 모방체를 포유류 세포에 전달하는 연구’.

펜텔루트 교수는 “탄저균의 독성을 없애면 항체약물을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플랫폼 기술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번 연구에 착수케 되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펜텔루트 교수팀은 탄저균 독소의 무장해제 버전(disarmed version)을 사용해 ‘항체 모방체’(antibody mimics)로 알려진 2개의 단백질을 전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항체 모방체’들이 세포 내부의 특정 단백질들에 교란을 유도해 암세포들을 사멸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는 것.

항체 모방체를 세포 내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항암제를 비롯한 각종 신약을 개발하는 데 응용이 가능함을 입증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펜텔루트 교수는 언급했다.

이와 관련, 체내에서 생성되어 외부의 침입물질들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의미하는 항체는 최근 신약개발에서 발빠른 발전을 거듭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의 하나이다. 이 같은 단백질간 상호작용에 주목한 과학자들이 상피세포 성장인자 2 수용체(HER2)의 경우처럼 암세포들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에 교란을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항체약물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블록버스터 항암제 ‘허셉틴’(트라스투주맙)이 바로 이 HER2 수용체가 과다발현하는 기전을 나타내는 유방암을 치료하는 데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례이다.

이에 따라 다른 항체약물들도 암세포 표면에서 발견되는 수용체들을 타깃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신약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백질이 세포막을 통과하고 세포 내부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 같은 방법을 실제로 약물개발에 접목시키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따라왔다는 사실이다.

펜텔루트 교수도 “세포막을 통해 항체약물들을 세포 내부로 진입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이 부재한 현실이야말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른 주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단정지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펜텔루트 교수팀은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탄저균 독소가 세포 내부로 진입하는 방법을 규명하는 데 힘을 기울여 온 가운데 그 같은 기전을 모방해 크기가 작은 단백질을 백신으로 체내에 전달하는 연구가 최근 착수된 현실에 주목했던 것.

펜텔루트 교수에 따르면 탄저균 독소는 3가지 주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방어항원(PA)이다. 이 방어항원은 대부분의 포유류 세포에서 눈에 띄는 수용체 ‘TEM8’ 및 ‘CMG2’와 결합하는 작용을 갖는다.

방어항원이 일단 수용체들과 결합되면 치사인자(LF)와 부종인자(EF)라 불리는 2가지 탄저균 단백질들이 머무를 정박소(docking site)가 형성되는데, 이 단백질들은 작은 구멍을 통해 세포 내부로 유입되어 세포 분화과정을 교란시키고, 결국 세포괴사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펜텔루트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펜텔루트 교수는 독성 발현에 관여하는 치사인자 및 세포인자 단백질 부분을 제거할 경우 단백질이 세포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이 무해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펜텔루트 교수팀은 세포 내에서 독성을 띈 부분을 항체 모방체들로 대체해 수송 단백질들이 방어항원 경로를 거쳐 세포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에 승선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펜텔루트 교수는 이 같은 방법으로 다양한 단백질을 세포 내부로 진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펜텔루트 교수팀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원인 단백질로 작용하는 ‘Bcr-Abl’을 겨냥한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결과 단백질 내부의 암세포들이 프로그램화 세포사멸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암세포 내부에서 과다증식을 유도하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알려진 ‘hRaf-1’의 작용을 차단하는 연구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현재 펜텔루트 교수팀은 발암을 유도한 실험용 쥐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시험을 진행 중이다.